금융과 경제

김영란법 단상

Chuisong 2016. 7. 10. 15:36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9월에 시행된다. 기득권에 우호적인 한 신문은 김영란법의 시행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섬뜩한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아래 참조). 이미 헬조선을 이야기하는 다수의 국민에게 이 제목은 잘 와닿지 않는다. 더 이상 떨어질 지옥이 있기나 하며, 과연 이 법의 결과가 그럴까?. 기자는 이런 저런 수치를 잔뜩 인용하면서 법이 시행되면 농수축산업 종사자의 소득이 급감하고 내수가 엉망이 될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1  

  

   부패가 없는 사회를 현실에서 발견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투명한 사회에도 약간의 부패는 존재한다. 투명도에서 뒤떨어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큰 부패가 많은지라, 일상화된 사소한 부패를 인식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랬다. 거래처와 간혹 선물을 주고받았고, 자주 같이 밥을 먹었다. 지인의 경조사에 부조를 하는 경우는 귀찮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법의 적용대상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위를 제약하는 법의 시행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새로운 법이 시행되면 그냥 그 법에 따라서 행동하면 될 뿐, 이 법의 시행으로 생활이 그리 불편해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 법의 적용대상을 축소하고 금액을 상향조정할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이들 대부분이 관련업종 종사자의 생계와 내수침체를 핑계로 대고 있다. 한 마디로 한심하다. 알량한 자기들의 편익을 옹호하기 위해 농축수산업 종사자의 긴박한 사정을 동원하는 행태는 치졸하다. 이들의 농어민 사랑이 그렇게 극진한 것이었는지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다. 한미FTA에서부터 최근 연평도 꽃게잡이 어민의 문제까지 이들이 발벗고 나서서 농어민의 생활고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정말 그렇게 농어민을 걱정한다면, 김영란법이 없는 지금 농어민들의 삷은 과연 행복한지를 먼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김영란법의 시행이 더 큰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다. .   


   내수 침체는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근본적인 처방은 무시하고,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식의 처방만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초에 나온 공휴일 지정이 그렇다. 휴일 며칠 늘린다고 내수가 진작될 수 있을까. 그것도 즉흥적으로 말이다. 이번에는, 식사와 선물의 수수가 내수를 진작시키는 유일한 방안이었다고 자백하는 듯하니 안쓰러울 따름이다.   

 

   이들은 법의 시행 취지에는 동의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저항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나는 이 법의 적용대상자로 추정되는 4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대부분이 선물, 식사, 경조사 화환이 없으면 인생의 낙이 없어진다고 울상짓지 않을 것이다. 추측건대, 이런 여론을 주도하는 소수의 음습한 세력이 있는 것 같다. 그 세력들은 자기들의 큰 부패를 방어하기 위해 일상적인 부패를 햇빛가리개처럼 사용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 법의 시행으로 햇빛가리개가 제거되고 자신들이 직사광선에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진정 지옥길을 걱정하는 주체는 가림막 뒤에 숨은 정운호와 홍만표 부류이지 않을까.     

 

  김영란법은 지금까지의 일상적인 부패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가지치기를 통해 더 큰 부패의 몸통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일부 계층의 생활에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새로운 거래 관행을 정립하는 것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건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한 일시적인 진통일 뿐이다. 언론이 주장하는대로 이 법을 통해 피해를 보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피해는 부패로 인한 거시경제적 피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사회적 비용을 제외하고라도 부패의 경제적 비용은 너무나 크다. 덩치 큰 국책사업이 부패로 얼룩지게 되면 기초연금, 반값등록금, 청년수당, 산후조리, 무상보육 등이 사라진다. 반대론자의 말대로 지금 당장 수조원, 아니 더 많은 판매액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로 이 법의 시행에 딴지를 거는 행위는 옳지 못하다.

 

  이 법의 시행으로 부패의 연결고리가 점점 드러나 사회가 투명하게 된다면 중장기적으로 농어민을 포함한 국민 전체의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법의 세세한 규정을 떠나 그 취지만으로도 이 법의 시행을 환영하고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2    


     

 

  1. 어떤 정책이 있을 때마다 정책의 효과를 수치화하는 보고서가 발표되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일례로 2009년인가 G20의 경제적 효과가 수십조라는 발표도 있었는데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 수치를 도출하였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본문으로]
  2. 다만, 한 가지 우려가 있다면 이 법의 족쇄를 용케도 빠져나가려는 창조적인 머리굴림이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