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백남기 농민의 빈소와 세월호 어머니

Chuisong 2016. 10. 1. 22:51


    9월 중순, 연구실에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서울 말씨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정희 선생님이시죠?" 순간, 나는 보험이나 대출 판촉전화로 생각하고 빨리 끊어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너무나 차분했다. " 단원고 오영석 군 어머닙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년 전 4월 20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한 이후 뉴스로만 그들의 소식을 접하였는데, 그 유족의 한 사람을 전화로나마 직접 접한 것이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그 짧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는 416 기억저장소 후원회 가입자의 명의와 이체용 계좌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였고 나는 조용히 대답하였다. 질문이 끝나고, 그 어머니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을 부디 잊지 말아 주세요" 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러겠노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지만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 어머니가 오늘 기사에 나왔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에게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아 지금 대통령을 찍었다는 그 어머니는, 그 대통령이 지휘하는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도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채 떠나는 백남기 농민의 빈소에서 숨죽여 울었다. 세월호 침몰 후 10일이 지나 10개의 손톱이 모두 새까맣게 된 상태에서 올라온 아들을 맞이한 그녀의 회한이 얼마나 클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 아들과 백남기 농민이 겹쳐 보이면서 도저히 울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애초에 잘 하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하였지만, 이렇게도 처참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예상보다 훨씬 저열한 수준의 정부를 보고 있노라니 나날이 울화만 쌓인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이 홧병을 앓고 있으리라. 그런데 이런 막장드라마가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정말 서글프고 비루한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