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카톨릭에 대한 단상

Chuisong 2014. 9. 5. 17:18

     카톨릭을 종교로 택한 지 어언 30년이 가까워져 오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를 카톨릭으로 이끈 것은 바로 1987년의 명동성당이었다. 나는 1987년 11월에 명동성당에서 세례(세례명 안드레아)를 받았다. 가까운 신림동 성당을 두고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이 걸리는 명동을 굳이 택한  건 당시 군부독재 상황에서 명동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었다. 요즘같이 정보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명동성당은 곧 아고라였다. 신문과 방송이 제 역할을 못할 당시 대학생이 아닌 다른 계층의 다양한 의견을 대면해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명동성당 앞마당이었다. 몇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사람들이 줄줄이 모여들어 너도나도 의견을 개진하였다. 지금의 페이스북은 1987년에 그런 형태로 명동에 존재하였다.  

 

  1987년 6월 항쟁의 발단은 그해 1월에 발생한 박종철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카톨릭 사제의 역할이 없었다면 그 죽음은 실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잊혀버렸을 것이다. 1987년 5월 18일, 광주항쟁 추모미사가 끝난 자리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축소 조작되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폭로를 한다. 정치권의 그 누구도 서슬 시퍼렇던 군부에 감히 저항하지 못할 때였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최초의 얼토당토 않은 변명으로 시작하여, 고문치사가 밝혀진 이후에는 사건을 2인의 범죄로 축소하며 버티던 정권은 거리로 뛰어 나오는 대학생들을 막으려다 연세대생 이한열의 죽음을 불렀고, 이는 시민항쟁으로 이어져 결국 전두환이 두 손을 들게 된다.      

 

  2014년 현재 카톨릭은 외형은 번성하였을지 몰라도 내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1987년의 명동성당이 아고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김수환 추기경 때문이었다. 당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많은 약자들이 명동에서 농성을 하였다. 주변 상인들에 대한 피해를 핑계로 경찰이 농성자를 해산할 수 있었지만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김수환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나를 밟고 지나가야 저들을 연행할 수 있다"고 버텼기 때문이었다. 명동성당은 한편으로 소도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 염수정 추기경의 명동성당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제들이 입을 모아 대선부정을 외칠 때 "사제들의 정치참여를 우려한다"는 말로 찬물을 끼얹었던 사람이다. 광화문과 매우 가까운 명동에 있으면서도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장을 방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고 현장인 진도 팽목항은 그에게는 생각 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산의 분향소도 그에게는 멀기만 한 곳이었다. 그러던 그가 교종이 다녀간 후 마지못해 나온 듯한 모습으로 광화문에 와서 한 말은 "유족들이 양보하라"였다. 자식을 잃어 가슴에 묻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더 양보하라는 것인지 그의 사고체계가 궁금할 뿐이다. '끗발이 없어' 대통령에게 옳은 말 한마디 못할 정도라는 그에게 우리가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으랴. (염수정 추기경의 극보수 성향은 집안 내력인 것 같다. 염 추기경의 형제 두 명이 현직 사제로 활동하고 있고, 그 중 한 명이 내가 다니던 잠원동 성당의 주임신부였는데 그는 미사 중 강론에서 4대강사업을 공공연히 옹호하였다. 당시 천주교는 종단의 입장에서 4대강을 반대했다.) 

 

  예전에 같이 활동했고, 지금도 만나는 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은 사람들이다. 온화하고, 남을 존중하며, 성경을 열심히 읽고 필사까지 하며,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사람들이 나에게 세월호 유족 비방 카톡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 왔다. 이 엄청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난 8월 교종 프란체스코가 다녀간 이후 카톨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누구는 지금 카톨릭 입문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라면 그들을 선뜻 성당으로 이끌지 못할 것 같다. 오히려 카톨릭에 대해서 더 실망만 하고 돌아설 것 같기 때문이다.  카톨릭의 사회교리에 대한 최근의 관심 또한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 만큼 카톨릭 신도들이 성경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다. 예수님의 언행을 그대로 믿는다면 사회교리가 별도로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상식만으로도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삶을 우리에게 원하시는지를 너무나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양심을 가지고 산다면 비신자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종의 말씀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적지 않은 사제와 신도들이 지금의 현실에서 보이는 행태는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고로 나의 이 고민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며, 그런 중에도 그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은근히 괴롭게 한다. 남수단 톤즈에서 목숨을 바친 이태석 신부님은 생전에 '주변의 가장 약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깊이 마음에 간직하였다고 한다. 이제는 카톨릭 신자 모두가 성경의 어떤 구절을 가장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지,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지 자문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