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경제

잔디깎이 정부

Chuisong 2015. 8. 13. 15:20

   살면서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경제가 좋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 이전에라도 기업인1 스스로 '경제가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꽤나 호황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전두환 정권이나 김영삼 정권 초기에도, 그들의 경제에 대한 평가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호황일 때는 '잘 나갈 때일수록 향후 위기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했고, 불황일 때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고 했다.  

 

   기업들은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이 어렵다고,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면 노조가 생산을 방해한다고, 유가가 오르면 생산비가 오른다고 울상을 짓는다. 이익이 엄청나게 나서 기분 좋아해야 할 것 같을 때에도 앞으로 투자할 거리가 없다고 엄살을 부린다. 올챙이 시절 국민의 도움을 받아 개구리가 되었으면서도,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이룬 것처럼 행세하며 욕심을 멈추지 않는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역대 대부분의 정부는 이런 기업의 투정에 항상 지극 정성으로 화답했다. 환율이 내리면 막대한 돈을 풀어 환율을 방어해 주고, 노동조합이 파업이라도 하면 온갖 도구를 동원하여 노동자를 핍박하였다. 노사정 테이블에서도 정부의 역할은 대부분 말리는 시누이였다. 낮은 전기료로 유가 상승의 충격을 방어해 줬고, 이익이 법인세 때문에 줄어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그리고 투자할 거리가 없다고 하면 지방균형발전의 소명은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수도권 규제를 완화시켜 주었다. 지금은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소위 '노동개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다가오는 15일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범법자 기업총수를 사면한다고 한다.

 

   생존 위기에 몰린 수많은 서민을 제쳐두고, 정부가 부자에게 이렇듯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무언지 진짜 궁금하다. 만약, 아직도 대기업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다면 경제 공부를 다시 좀 해 보라고 권한다. 혹시 기업으로부터 수취하는 반대급부가 있다면 이제 그 가능성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으니 서둘러 그 버릇을 버려야 될 것 같다. 이 모든 것도 아니고 그냥 그들과 자주 접촉하다 보니 인간적인 정이 쌓였기 때문이라면, 공과 사를 구별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하고 싶다.   

 

   얼마 전 언론에 '잔디깎이 맘'이라는 이상스런 용어가 소개되었다. 미국에서 자식을 명문대학에 보내고도 앞날이 걱정되어 수강신청, 성적이의 제기, 심지어 취업활동까지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어머니를 지칭한다고 한다.2 그 덕에 자식은 대체로 큰 걱정없이 편안하게 인생을 살 수 있지만, 약간의 어려움이라도 있을 경우에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고민하다 결국은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 그 보도의 결론이었다.  

 

   이 보도를 접하고 대기업 일변도의 정책을 펼치는 정부가 잔디깎이 맘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한 보살핌이 자식을 성장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죽음으로 모는 원인이 됨을 미국 명문대학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정부의 맹목적인 대기업 편들기는 대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주지 못하고 쇠퇴를 촉진한다. 지금 벌써 몇 개의 대기업은 그런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느낌이며, 아마 많은 기업들이 조만간 그런 상황에 당면할 것이다.

 

   국내 대기업은 지금 현재로도 과도한 보호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갑질을 할 만큼 충분히 영악하다.3 그러니 정부는 쓸데없는 짓거리를 제발 그만두고 그 정성을 다른 곳으로 쏟기를 간절히 바란다. 

  1. 여기서 기업인은 주로 대기업의 경영자를 지칭한다. [본문으로]
  2.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용어이다. [본문으로]
  3.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아모레 일가의 갑질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