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월 12일)도 7월과 비슷한 오후 7시 44분이었다. 식사시간이 늦은 우리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방의 방문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천정이 아래 쪽으로 얕게 늘어지는 모습에 급기야 숟가락을 놓았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이거 뭐지, 하였다. 지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히 알기 위해 급히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려고 하였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티비를 이리저리 돌렸지만 아무 곳에서도 안내를 해 주지 않았다. 거의 10분 가까이이 지나서야 하단 자막에 '경주 남서쪽 9킬로미터에 진도 5.1 지진'이라는 속보가 떴다.
다행히 첫 지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식사를 겨우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쉬는데 갑자기 아까보다 더 큰 진동이 발생하였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어어 하며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공포가 확 다가왔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뒤 진동이 멈추었을 때 우리는 가까스로 옷을 대충 챙겨입고 계단을 통해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1시간 정도를 공터에서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10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티비를 켜니 kbs에서 특보를 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진동을 느꼈다고 하였다. 두번째 지진은 진도 5.8로 밝혀졌고 우리처럼 집을 뛰쳐나온 사람이 드물지 않았다. 경주에서는 약간 명의 부상자도 발생하였다.
시간이 흘렀지만 뉴스는 더 이상의 새로운 소식은 없이 이미 방송한 부분을 반복하였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오늘 수업도 있고 해서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자리에 누워서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아까의 공포스러웠던 상황이 다시 떠 올랐다. 어릴 적 살던 집의 방 천정은 아주 얇은 판지였고 겉은 벽지로 덮여 있었다. 지붕과 천정 틈은 쥐들의 천국이었고, 바람이라도 불 때면 천정이 방바닥을 향해 늘어지곤 했다. 그것을 보고 어린 나는 행여나 지붕이 무너지지 않을까 공포스러워했다. 그 이후로 견고한 합판 천정을 가진 집에서 살면서 그런 모습은 보기 어려웠는데, 오늘 저녁 나는 바로 옛날의 그 천정을 본 것이다. 콘크리트로 된 아파트의 천정이 그렇게 시루떡처럼 부드러울 수가 있다니, 저승에서 보자던 말이 농담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평온한 상태에서 가만히 생각하니 지진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이 있었다. 거의 온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어제 지진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국가를 보았는가? 어제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국가를 대표할 만한 어느 누구도 즉시 국민 앞에 나서지 않았다.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분명히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서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의지를 표명하고 국민을 안심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은 고사하고 국민안전처의 책임자 조차도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기상청의 공무원, 그것도 청장이 아니라 실무자 한 사람이 느지막하게 나타나서 별 내용 없는 브리핑을 한 것이 최초의 대응이었다. 걸핏하면 민생이니 하며 국민을 위하는 척하던 정부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고 후 2시간이나 지나고서야 보고를 받았다는 대통령이 국무총리실을 통해 한 말에서는 여느 때처럼 구체성도 성의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국무회의에서도 지진에 대해서는 전혀 비중을 두지 않았다. 마치 딴 나라에 사는 사람처럼.
정부의 미비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진은 다행히 큰 피해를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앞으로 더 큰 지진이(혹은 다른 자연재해가) 발생한다면 이 정부는 과연 국민을 잘 지켜줄 수 있을까?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세월호나 메르스 사건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번 정부에서는 가능성이 낮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가능할까? 현 정치 상황을 보건대 다음 정부가 그러리라고 자신하기도 쉽지 않다.
자연재해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예방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국민은 어제 지진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정부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고가 났을 때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정 공포스러운 것은 재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고가 나도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배신감과 이런 상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절망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