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해직된 이용마 기자가 출간한 저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를 읽었다. 어린 두 아들이 10년 후 성년이 되었을 때 아빠의 입장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그는 2016년 9월에 복막암으로 12-1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10년 뒤를 장담하기 거의 힘든 아버지로서 마땅히 할 법한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실행에 옯기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힘겹게 어려운 일을 완수하였다.
작가가 살아온 인생이 담긴 책은 20세 정도의 젊은이가 이해하기 쉽게 평이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의 삶의 배경인 한국의 현대사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젊은 날의 고뇌, 기자로서의 치열한 삶이 담담히 그려져 있다. 나보다 4살 어린 이 기자이기에 나와 거의 비슷한 시절을 살았던 것 같다. 많은 부분이 비슷했으며, 특히 젊은 날의 고민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젊은이들의 전형이었다. 기자로서 그는 사회의 비리에 메스를 대기를 꺼리지 않았고, 부정과 결코 타협하지 않았으며, 약자에 대한 연민의 눈길을 멈추지 않았다.
MBC만 보던 시절이 있었다. 최승호PD의 PD수첩, 신경민과 박해진 투톱 앵커의 아홉시 뉴스 등 그럴만한 이유가 넘쳤다. 그 중에 이름이 약간은 특이한 이용마 기자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MBC를 외면하게 되었고, 그런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 사이 이용마 기자와 다른 5명이 해고되었고, 무수한 직원들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했다. 이 기자는 설상가상으로 작년 9월, 희귀한 암까지 앓게 되었다. 이때부터 계속 그에게 신경이 쓰였다. 올곧은 인품과 기자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지닌 그가 해직과 병마에 유린당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작년의 촛불집회 발언,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 오늘의 복직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나보다 나이가 어린 그가 요즘 보기드문 참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이 저렇게 감정을 절제하면서 논리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현장의 주변 사람들이나 그 영상을 보는 내가 툭하면 울기 일쑤였으니. 얼마 전 이영희 언론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내 생명의 불꽃이 조금씩 꺼져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하면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두 아이와 아내를 대동한 시상식 장에서 아이들 때문에 약간 감정이 복받쳤을 것이다. 주위에서는 훌쩍거리는 동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았으며, 이영희 선생에 대한 존경과 찬사, 그리고 수상이 갖는 의미를 담담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가 자기를 이렇게 만든 세력에 대한 분노나 억울함 등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망가진 사회를 되돌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모두 협력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잔잔히 설파하고 있을 뿐이다. 드디어 오늘 해고자 전원이 복직되면서 이용마 기자도 해직 후 첫 출근을 하였다.복직 첫 출근 소감에서도 그는 역시 잔잔한 표정으로 몇 가지를 말했다. MBC를 다시 출발하게 만들어 준 작년 촛불시민의 힘을 잊지 말자는 부탁, 사회를 감시하고 억울한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언론 본연의 자세를 잃지 말자는 다짐. 그리고 돈만을 중시하지 말고 인간답게 좀 살아보자는 바람. 휠체어에 탄 그의 몸은 연약했지만, 그의 말은 그 어느 누구의 말보다 묵직했다. 그의 말은 매우 교과서적이어서 세파에 찌든 대다수에게는 현실을 부정하는 소리로 들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굴러가야 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고. 그의 복직 소감이 어쩌면 조용히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 그가 남은 사람들에게 간절히 전하는 유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친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 복직이 깨어나기 싫은 꿈처럼 영원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간절히 빌어본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 이용마 기자는 2019년 8월 21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