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식사를 하고, 볼 일을 보고, 산책하고, TV를 보고, 책을 읽고.... 반복되는 이런 행위를 말하는 일상은 따분함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살면서 특별한 일이 생기는 날은 드물다. 그나마 어느 정도 나이가 들 때까지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간혹 만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이 즈음이면 삶이란 곧 일상의 축적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최근 고영태의 녹취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미 이전에도 그런 말들이 떠돌았다. 그는 스스로 쇼핑을 하거나, 은행이나 동사무소에서 볼일을 처리하거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거나 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못한다고 한다. 시장에서 고춧가루를 보고 '고추로 만든 가루'라고 말한다거나, 물건을 샀는데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도 언론에 이미 보도된 바 있다. 그리 새롭지 않은 이 사실을 접하며 새삼, '그가 만약 어린 시절부터 일상에 익숙할 기회를 가졌다면 지금의 사태가 왔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이다. 생활의 기본을 스스로 하지 못하니 자연히 최순실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서 형성된 의존적인 습관은 결국 의사결정도 혼자 못하게 만드는 상황으로까지 연결되었다. 결론적으로, 그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면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국정농단 사태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일상생활을 영위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된 것은 본인의 타고난 기질 탓도 있겠지만 부모의 잘못된 교육이 더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독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들은 자기 자식들이 최고 권력자의 자녀로 살 수 없는 상태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싫었을 것이다. 일생 동안 전제군주의 자녀처럼 떠받들어지기를 원했고, 그러니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은 가르칠 필요가 없없던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이었다면 그 오만과 오판의 결과는 그 가정에 국한되었을 것이나, 독재자 집안에서의 잘못된 교육은 자식을 망친 것에 그치지 않고 오랜기간 전 국민을 고달프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오직 한 사람 때문에 국민들이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나날이 벌써 며칠인가.
전 국민을 분노와 울화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작금의 사태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였으니 그들에게 고맙다고 해야할지 마음이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