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페이스북 친구 계정을 타고 모 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의 타임라인을 보게 되었다. 경제사를 전공한다는 그는 놀랍게도 일베류의 싸이트에서 정보를 얻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매우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약간 검색해 보니 그는 소위 뉴라이트의 일원이었다. 나는 뉴라이트의 선두에 서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자에 대해 이전부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경제사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나에게도 그들의 논리는 매우 궁색해 보인다. 매우 열심히 공부하고, 쉽게 취득하기 어려운 자료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지만 규범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쉽게 비유하면 이렇다. 강도가 어떤 집에 침입하였다. 식구들은 숨죽였고, 강도는 금품을 찾는 과정에 식구들도 알지 못하던 곳에서 돈 뭉치를 발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식구는 강도를 도왔다. 외부인의 신고로 강도가 도망치면서 약간의 돈을 흘렸고 가족은 그 돈을 차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의 식구는 강도를 잡으려다 상처를 입었다. 강도는 떠났고 도망치는 강도를 도운 구성원이 강도를 잡으려던 식구의 상처를 보듬기는 커녕 큰소리를 치며 강도가 흘린 돈을 차지하였다. 이에 대해 뉴라이트는 강도가 식구들이 알지 못하던 돈뭉치를 찾아 주었고 일부를 흘려 놓았으니 결국 가족의 생활에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규범에 비추어 과연 동의할 만한 논리인가?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 강도는 그 가족에게 돈뭉치를 찾아주기 위해서 침입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일제가 조선을 침입한 것은 조선을 근대화시켜 주려는 선의가 결코 아니었다. 가족이 강도를 환영한 적이 없다. 조선이 전 국민의 뜻으로 일본의 조선 진입을 환영한 적이 없다.
둘째, 그 가족은 강도에게 들어와서 돈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니 강도가 찾아준 돈은 결코 반갑지 않다. 그 돈은 강도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찾을 수 있는 돈이었고, 설사 그 돈을 찾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가족의 생활이 파멸할 정도는 아니었다. 궁핍하기는 했지만 서로 보듬어주면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가족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강도가 흘린 돈뭉치가 아니라, 살림살이의 자기결정권이었다. 일제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근대문물을 도입했고 그것이 조선인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반가운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언젠가 조선은 주변부와 비슷하게 근대화의 길을 걸었을 것이고, 설사 그것이 매우 늦게 달성되었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면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신봉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논리가 필연적으로 친일파에 대한 옹호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니, 이들은 친일파를 옹호하기 위해 식민지근대화론을 발전시켰다는 것이 더 적합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위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식민지근대화론자는 강도를 도와준 일부 식구가 더 바람직한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일제시대의 적극적인 친일파들이 바람직한 역할을 하였는가? 그들이 민족을 위해 떳떳한 일을 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며, 친일의 후손들이나 뉴라이트들 역시 친일이 그렇게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 선조들의 친일을 극구 숨기거나 부인하고, 혹시 탄로나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억지 주장으로 물타기를 하기 때문이다. 김무성의 사례가 그렇다. 안중근, 윤봉길, 김구 등 독립항쟁가들의 일생을 대놓고 부정하지 못하는 행태를 봐도 그 심증은 더 굳어진다.
한 마디로 친일과 독립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매우 어정쩡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뉴라이트의 주장은 매우 억지로 여겨지는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국의 근대경제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한 때 식민지반봉건사회를 주장하던 학자들이었는데 갑자기 그들의 경로를 바꾸었다. 자신들의 변경된 경로를 뒷받침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식민지시대의 자료를 발굴해서 실증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 자료가 얼마나 일본에 우호적으로 편향되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없는 듯하다.
이런 그들의 편향되고 왜곡된 사고는 현재의 상황에서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로 이어진다. 박근혜는 친일파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이며, 지금 박최 게이트의 주된 피의자가 아니던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행보를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바로 여기다. 그들이 학문적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보더라도 친일파를 지지하는 데서 나아가 범죄자를 두둔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는 의문이다. 만약, 두 행위에 상당한 연계성이 있다면 나는 그들의 식민지근대화론이 매우 의도적인 조작임을 그들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증거라고 판단한다. 더구나, 말도 되지 않는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일베류(노컷일베, 미디어워치 등등)의 저질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니 정말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과연 무엇인가 말이다. 유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근대경제사를 전공하여 일생을 연구에 매진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 뭐하냐 말이다. 학식이 없어도, 그리 많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을 이들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데. 세부 전공은 다르지만 같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오늘 이 사람의 페이스북을 보면서 공부는 인생에서 과연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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