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이 끝났다. 개표상황을 지켜보다가 밤을 꼬박 새우고 6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웠다. 피곤해서 금방 잠이 올 것 같았는데 왠지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지난해 8월 이후 엄청난 상황의 전개에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6개월이 흘렀다. 그 동안 블로그에 글을 하나도 올리지 못하였다. 시도하였으나 도저히 글이 진척되지 않았고, 결국 나중에 상황이 좀 진정되면 글을 쓰자고 정리하였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253석)에서만 163석을 얻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마치 휴식 시간을 얻은 느낌이 드는 지금,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1. 조국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이 까발려졌고 정도는 약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작년 8월 훨씬 전에도 그의 자녀가 외고에 진학한 것에 대해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간간이 비판하곤 했다. 그 때는 그것이 이슈화될 정도가 아니었는데 그가 법무부장관에 내정되자 보수측에서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장관청문회를 앞둔 당연한 절차라고 여겼는데 점점 과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위공무원의 직무수행 능력이나 최소한의 도덕성 검증기준과는 전혀 거리가 없는 내용이 쏟아졌다. 이 즈음 조국은 마치 광장의 한 가운데에 나체로 서 있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언론과 검찰의 유례없는 협업은 처음에 이상하였지만, 그것이 검찰개혁에 저항하기 위한 기득권의 합동작전임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그리 걸리지는 않았다. 마치 사냥을 방불케하는 압수수색이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언론은 내용 확인도 없이 이를 전달하기 바빴다. 조국의 부인은 수사 없는 기소를 당한 이후에 구속까지 되었고.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데, 검찰이 기소한 내용은 거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고 있으나 언론은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2. 진보주의자
조국에 대한 검찰의 집요한 사냥행위가 진행되고 있을 때 예상과 달리 많은 진보인사가 조국을 비난하고 나섰다.1 조국의 위선에 실망했다는 것인데, 도덕성에 실망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부분이 없지 않다. 나 또한 평소 그가 쓴 글을 통해 그의 생활을 짐작하였기에 과도한 자녀스펙 쌓기에 약간의 실망감을 가지기도 했다(그러나 이 부분은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당시에는 장려되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2 다만, 조국 부부는 그걸 너무 열심히 했던 것이다.). 조국 스스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여러 차례 표현하였다.
고위 공직자는 분명히 일반 사람들에 비해 높은 도덕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공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성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직자를 선택하는 것이 성인군자를 선택하는 행위는 아니다. 조국이 그 기준에 저촉되는 점은 하나도 없었기에 그가 공직후보로 부적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진보인사들은 죽어도 조국이 법무부장관에 임명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진보는 도덕성을 상실하면 끝이라는 것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그들의 논리였다. 그 사람들은 그런 도덕성 프레임을 들고 나온 측이 도덕성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보수정치세력 및 이들과 결탁한 검찰이라는 점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했다. 아니 그러한 비도덕적인 기득권 동맹의 파렴치한 행위보다 조국의 사소한 언행불일치가 더 거슬리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조국의 도덕적 흠결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검찰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해당 진보인사 중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3
상식적인 진보라면 도덕성 프레임 뒤에 감추어진 검찰개혁의 문제를 먼저 따지고, 그 후에 도덕성 문제를 논의하여야 했다. 굳이 도덕성 문제가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했더라도 도덕성과 검찰개혁 이슈를 별도로 다루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뒤섞어 버린 보수세력과 검찰에 항의하였어야 했다. 그들이 검찰이 가리키는 쪽을 멀뚱히 바라보는 사이에 검찰은 가면 안에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검찰개혁의 싹을 자근자근 밟아버리고 있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는 진보였지만 내내 자기들의 스탠스를 버리지 않았고, 심지어 진중권 등 일부 인사는 검찰 편에 공개적으로 서기도 하였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진보 내 어떤 인사에 비해서도 조국의 삶은 깨끗하다는 것이 밝혀졌다.4 검찰은 조국에게 온갖 누명을 다 씌웠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힐 만한 아무런 혐의를를 그에게서 발견하지 못하였다. 오죽하면 표창장 위조 건으로 지금까지 법정에서 다투고 있을까?5 조국 개인이나 일가에 대한 비리 조작에서 실적을 거두지 못하자, 검찰은 엉뚱하게 사건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의 업무로 확대하였다. 말 그대로 인디안 기우제식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유명을 달리한 검찰 수사관도 발생하였고6, 조국과 일을 같이하던 참모들도 다수 기소되었다. 이제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갔지만 검찰이 조국의 범죄를 제대로 입증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 소식만이 들려온다.
3. 윤석열
50여 년 인생을 살면서 다행스럽게도 남에게 크게 속은 경우는 거의 없다. 한때 윤석열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응원했다. 저 사람이면 문재인 정부를 도와 검찰개혁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청문회 마지막날 뉴스타파에서 녹취파일을 공개했을 때 뉴스타파에 대한 후원을 최소하기도 하였다(물론 그 이후에 다시 후원을 재개했지만).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스릴러를 좋아하지만 이런 엄청난 반전이 있는 스릴러를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솔직히 어리둥절하다. 박근혜 때 거의 옷을 벗을 처지였던 사람을 대통령이 중용하고 최고 자리에 까지 올려 주었는데, 임명되던 그 날부터 대통령을 모욕하고 반기를 들 생각을 하였다니. 보편적인 감정 구조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곰곰이 생각하니 한 때 이 사람이 정의로워 보였던 것은 사실 자기마음대로 사는 모습을 내가 착각하였던 것이었다. 최근 밝혀진 수많은 사건(장모 및 부인 사기사건 등)에서 이 사람이 보였던 행태, 그리고 총선 당일 투표를 하면서 비닐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것 등이 그 증거의 일부이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는 한 없이 관대해서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극단적인 규율을 강요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때나마 이런 사람을 응원했던 것이 정말 부끄럽다. 마치 사기를 당한 기분이랄까. 하여튼 이 사람은 내 인생에서 전무후무한 캐릭터일 것 같다.
4. 어둠 속의 VIP
지난 6개월은 윤석열이 마치 대통령 같은 시기였다. 언론은 이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마치 대통령의 그것처럼 보도하였다. 검찰총장이 대노하였다, 라는 어처구니 없는 기사가 실린 것도 이 때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과연 이 사람이 지난 정국을 주도했던 사실상의 최고위 인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과연, 법무부의 일개 외청장이 혼자 일국의 행로를 좌지우지 할 수 있을까? 혹자는 그 뒤에 이명박이나 홍석현 등 수구언론 사장이 있다고 한다. 혹자는 삼성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어느 것도 증거가 없는 의혹일 뿐이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나무 뿌리 아래 또아리 틀고 뒤섞여 꾸물거리고 있는 뱀들처럼, 이기적이기 그지 없는 기득권의 교활하고도 음흉한 동맹이 있다. 나는 이들이 지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물적인 본능으로 뭉쳐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지목한 칼잡이가 바로 윤석열일 뿐인 것이다. 어떤 인센티브를 윤석열에게 제공하였는지는 몰라도, 윤석열은 이들에게 동조하는 것이 자기에게 가장 이로운 길이라고 판단하였음이 분명하다. 어둠 속의 vip는 바로 보수기득권 동맹이다.
5. 무엇을 할 것인가?
이번 총선의 승리는 보수기득권 동맹에 균열을 만드는 신호탄이다. 단순히 총선에서 압승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시작에 불과하며 아직 너무 많은 일들이 남아있다. 다행히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상황이 좋다. 소명의식의 화신인 대통령, 무엇보다 깨어있는 수 많은 시민들이 결집해 있다. 더우기 여당이 단순히 다수를 차지한 것이 아니고 개개인 모두가 단단한 정신으로 무장해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다.
검찰개혁은 지난 해 말 공수처법 신설, 검경수사권조정을 위한 형법 개정 등으로 골격은 어느 정도 갖추었고 이제 세부적인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검찰은 궁극적으로 기소만 담당하는 기소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에 못지 않게, 아니 더 시급한 것이 언론개혁이다. 언론개혁이 없으면 오보와 가짜뉴스가 판을 칠 것이고, 정치에 무관심한 층에게 음주 흡연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칠 것이다. 저급한 언론은 지금까지 진행된 개혁을 언제라도 뒤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열린민주당에서 공약한 대로 징벌적 손해배상죄, 오보방지법, 언론소비자보호청 설치 등의 조치가 서둘러 시행되어야 한다.
사법개혁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최종 판결권을 가진 판사가 엿장수 마음대로식의 판결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잘못된 판결, 편향되거나 정치적인 판결을 일삼는 판사에 대해 탄핵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마련어야 한다. 그 다음에, 다른 사안보다 시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학개혁 등의 교육개혁도 잊지 말아야 할 이슈이다. 마지막으로 재벌개혁은 매우 중요하지만 검찰개혁과 동시에 상당한 부분 개혁될 것으로 생각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공수처의 설치에 따른 검찰개혁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 견고한 보수기득권 동맹은 궁극적으로 해체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개혁의 결과는 한 마디로 투명한 사회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다.
- 김세균, 홍세화, 목수정, 우석훈 등과 스스로 진보라고 우기는 임미리, 진중권, 김경률 등이다. [본문으로]
- 2010년 기사(한겨레, 조선 등)를 보면 고등학생 인턴을 '진학과 진로 두마리 토끼를 잡는 좋은 제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문으로]
- 진중권은 2014년 '일베라고 하더라도 생물인 이상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조국을 무생물로 생각하는지 진중권에게 묻고 싶다. [본문으로]
- 솔직히 사돈의 팔촌까지 검찰에게 털릴 경우 조국의 언행불일치에 분노하던 그 인사들의 삶이 과연 조국보다 깨끗할지 나는 자신하지 못한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조국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고 자평한다. [본문으로]
- 검찰이 밝힌 위조방법도 오락가락했다. 최근 법정에서 검찰은 '직인파일이 정경심의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고 한 SBS 이현정의 기사가 오보임을 인정하였다. SBS는 여기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기생충의 졸업증명서 위조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본문으로]
- 이 수사관의 통화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검찰이 느닷없이 경찰서를 압수수색한 것은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아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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