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극우언론(조중동 등을 보수언론이라고 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한다)이 예의 귀족노조와 철밥통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만 하면 항상 꺼내는 전가의 보도가 귀족노조와 철밥통이다. 특정 노조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듣는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첫째, 귀족노조. 어불성설, 형용모순이란 말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철도노조가 6천5백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 것을 근거로 귀족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이 인용한 연봉은 그 대상이 근속연수 19년 정도의 철도 기관사이다. 굳이 국내총생산(gdp)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한 가정의 가장이 19년 일하고 받아오는 연봉이 이 정도라고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귀족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힘들다. (학생들을 면담하면서 원하는 초임을 물어보면 대부분 3천만원 이상을 답한다. 어떤 경우에는 4천만원까지도 이야기한다. 초임 천만원 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는 언뜻 놀라기도 하지만 그 동안 2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과도한 요구가 아님을 알아차린다. 그 동안의 경제성장으로 이들은 나와는 다른 어린시절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굳이 밝히려고 하지 않는 것은 노동시간이다. 철도노동자의 그 6천만원에는 야근수당 등 온갖 임금이 포함되어 있다.
귀족의 뜻이 무엇인가? 굳이 국어사전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귀족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언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도대체 역사의 어느 시기에 노동으로만 먹고 살 수 있는 계층이 귀족이라고 불리었던가? 최소한 귀족이라면 그 품위 여부를 떠나서 경제적으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는 재벌가 자손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 나이 어린 재벌2-3세의 주식보유 현황이 눈앞에 떠오르는 마당에 힘들게 기관차를 움직이며 철로를 수리하는 철도노동자가 귀족이라고 하니 어떻게 코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귀족의 뜻이 어떻든 간에 극우언론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것은 '노동자는 잘 살면 안 된다'는 못된 심보이다. 국민들 모두 힘들게 노력한 결과 우리는 그 동안 꽤 큰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빈부격차의 심화 등 문제가 없지 않지만 성장의 결과 노동자의 삶이 예전에 비해 대체로 풍요로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진정한 귀족들은 여전히 '노동자는 어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도대체 언제까지 성장해야 노동자도 좀 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
둘째, 철밥통. 견고해서 깨지지 않는 밥통이다. 신자유주의자가 좋아하는 '경쟁력'이 없어도 쫓겨나지 않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극우언론은 이런 조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그렇게 조작해 왔다. 경쟁력이 없는 노동자는 언제라도 쫓겨나야 한다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우선, 철도노동자의 일자리는 철밥통인가를 생각해 보자. 고용유연화로 포장된,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핵심 중의 하나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일자리는 그야말로 위태위태하다. 철밥통은 고사하고 유리밥통으로 불러야 맞을 정도이다. 이전 정부에서 이미 구조조정을 통해 수 많은 철도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철밥통은 과연 나쁜 것인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졌다. 그 이전까지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이었다. 철밥통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누구라도 안정적인 직장을 희망한다. 가능하면 직장을 옮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근무하면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에는 개인적인 취미활동 등 여가를 즐기면서 살고 싶어한다. 그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행복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국민행복시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정치인이라면 일하기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철밥통을 하나씩 주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이다.
극우언론은 요즘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사사로운 연예기사나 취미 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의 이익이 결부된 사안에 대해서는 언제나 아메바적인 보도행태를 보인다. 오늘 자기가 한 말을 그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다반사다. 발로 뛰지 않고 위에서 주는 정보를 그냥 전달하는 것을 기사라고 우긴다. 그러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시대이건 권력과 손잡고 그 이상의 권력을 향유한다.
제 구실 못하면서도 편하게 생활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는 언론이야 말로 자신들이 말하는 진정한 '철밥통 귀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