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이 지난 18일자로 천만 관객을 달성하였다. 영화를 만든 양우석 감독은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찌질한 것이 아니라 삶에 지쳐서 이렇게 살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인생 길에서 지치지 않는 태도라고 지적하였다.
양 감독의 말을 들으면서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25년 전 대학원생일 때 나는 거의 일년을 맹렬하게 인물 스크랩에 몰입하였다. 그 때 만든 스크랩북이 두어 권, 지금 내 방의 책꽂이에는 없으니 아마 이전에 살던 아파트의 공동창고에 잠자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떻게 살까를 밤낮 고민하던 그 시절, 다른 많은 사람의 인생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나한테는 매우 절실한 행동이었다. 인터넷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인쇄매체가 유일한 읽을 거리였기에 당시 창간된 한겨레신문을 일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꼼꼼하게 읽으면서 내가 닮고싶은 삶을 사는 사람을 스크랩하는 것이 나의 주된 일과가 되었다. 일일이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노역을 마다하지 않은 결과 탄생된 스크랩북은 나에게 매우 큰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마치 그럴듯한 책이라도 출판한 것처럼.1
그 때, 나 역시 양 감독의 생각처럼 내가 스크랩한 인물들이 앞으로의 인생 역정에서 지치지 않을까를 고민하였다. 그래서 스크랩북의 맨 앞 페이지에 머리말을 작성하면서, ".... 이 사람들이 인생을 끝내는 날까지 삶의 모습이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지금도 여전히 활동 중인 많은 인사들이 내 스크랩북에 등장하였는데, 아니나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적지 않은 인사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나갔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산 지금, 사람들이 살면서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다반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필부들이 생존을 위해 자기의 신념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가 가지만 생존의 고민에서는 벗어난 꽤 알려진 인사들이 자기 삶의 방향을 180도로 바꾸는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삶이 그리 녹녹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초심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고, 알아낸 초심대로 살기가 쉽지 않으며, 때로는 그 초심이 옳았던가에 대해 의문이 밀려오기도 한다. 변호인 송우석의 실제 인물인 노무현 대통령은 죽을 때까지 초심을 버리지 않았던 그리 흔치 않은 인물이다.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을 생각하면 항상 코끝이 씨큰하지만2, 나는 초심을 지키며 폭풍처럼 살다 간 그의 인생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