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인천 - 시카고 - 어바나 샴페인(Urbana Champaign, IL) - 블루밍턴(Bloomington, IN)

Chuisong 2017. 2. 23. 19:14


   2016년 12월 15일 오전 10시(현지시간) 경 시카고 오헤어(O'Hare)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004년 7월 귀국한 이후 무려 12년 만의 미국행이었다. 3년 전 유럽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13시간 남짓의 비행은 무척 길게 느껴졌다.1 짐을 찾고 Hertz에서 예약한 차를 찾기 위해서는 두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2시 이전에 차를 빌리면 하루 치 임차료가 더 부담되기 때문에 가급적 경비를 줄여볼 생각이었다. 비행기 내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집사람은 버거킹 탁자에 엎드려 잠을 청했고, 나는 하릴없이 청사 내부를 서성거렸다. 시카고 공항은 12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11시 30분 경에 Hertz에서 운행하는 셔틀을 타고 차를 찾으러 갔다. 예약한 등급의 차가 없어 한 등급 위인 토요타 아발론이 배정되었다. 아직 1000킬로 정도밖에 달리지 않은 새차였다. 이리저리 조작을 해 보느라 약간의 시간을 지체하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별도로 신청한 GPS(네비게이션)는 생각보다 성능이 매우 나빴다. 아이가 있는 어바나 샴페인(Urbana Champaign)의 집주소를 입력하고 길을 떠났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목적지 도착에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 옆 휴게소로 들어가서 체크한 결과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 경우 국산 네비처럼 로를 자동으로 재탐색해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2 미국의 도로는 안내표지가 매우 잘 되어 있어 도로번호와 출입구(Exit) 번호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굳이 네비게이션이 필요하지 않다. 아이에게 전화해서 도로번호와 출입구 번호를 알아내고 다시 차를 몰았다. 황량한 겨울 벌판 너머로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고 아이집에 도착한 것은 예상보다 2시간이나 늦은 때였다. 그날 밤은 아이와 타이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일찍 숙소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였다.    

  

  아이는 우리가 무조건 싼 것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는지 자기 집과는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저렴한 숙소를 예약해 놓았다. 저녁에 침대에 누웠는데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그대로 방안까지 들렸다. 미국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꽤 여러 숙소에 묵었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시차적응이 안 돼 다음날 새벽 4시 경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기다리다 아침 7시 경에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음식은 매우 소박하였다. 흑인 가족 대여섯 명이 우리 옆자리에서 아침을 먹었다. 행색은 누추했지만 매우 공손해 보였다. 아이들이 약간이라도 소란을 피울까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주의를 주었다. 해맑게 우리를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나와 집사람은 미소로 화답하였다. 식사를 먼저 끝낸 그들은 식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조심스럽게 식당을 나갔다. 흔한 여행객 차림이 아닌걸 보니 아마도 집없이 떠도는 홈리스인 것 같았다. 흔한 편견과는 달리 저렇게 공손하고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곤궁하게 살 수밖에 없는 미국의 상황이 무척 안타까웠다.3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무얼 할까 고민하다 갑자기 블루밍턴을 떠올렸다. 애초에는 자동차로 샴페인을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려고 하였는데 내일 졸업식이 끝나고도 충분히 그럴 시간이 있는 것 같았다.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불루밍턴까지는 2시간 30분에서 3시간 가량 걸릴 거라고 하였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차를 몰았다. 네비에 의존하지 않고 도로번호와 출입구 번호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종이에 기록하였다. 한시간 남짓 달리자 일리노이를 벗어나 인디애나로 들어간다는 도로표지가 나왔는데 왠지 고향을 방문하는 느낌이 들었다. 인디폴에서 블루밍턴으로 가는 39번 도로에 들어서니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도로 아래에는 열선을 깔았는지 도로 전체에 세로로 여러 개의 줄이 일관되게 나 있었다. 서울과 비슷한 위도이지만 겨울에 눈이 매우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눈이 약간씩 날리는 길을 따라 이런 저런 옛추억을 이야기하는 사이에 인디애나대학교가 있는 블루밍턴에 도착하였다. 와이너리(Olive winery), 퍼블릭 골프장(Cascade golf club) 등 낯익은 장소가 하나 둘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마침내 웅장한 풋볼경기장을 뒤로 하고 고풍스런 라임스톤 표지석이 우리를 반겼다. 


  블루밍턴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시간 남짓이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샴페인으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도 지리가 훤한 블루밍턴과는 달리 샴페인은 처음 방문한 곳이라 어두워지면 길을 찾기가 곤란해진다. 이미 점심 때가 된지라 옛날에 자주 찾던 칼리지몰(College Mall)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집사람이 선택한 애플비(Applebee's)에서 어렵사리 주문한 식사는 생각보다 짜고 양도 많았다. 대충 식사를 때우고 난 뒤 차를 타고 대학 캠퍼스를 돌았다. 평평한 땅에 벽돌조의 현대식 건물이 주종인 일리노이대학(UIUC)에 비해 구릉진 땅에 석회석으로 건립된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한 인디애나대학은 아름다웠다. 예전에도 캠퍼스가 아름답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지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마지막 코스는 우리가 4년 동안 살았던 캠퍼스 내 가족아파트였다. 



   위 사진 속 이층짜리 타운하우스는 우리 가족이 3년 6개월을 살았던 곳이다. 일층에는 작은 부엌과 상대적으로 큰 거실이 있고, 이층에는 방 두 개와 욕실이 하나 있는 소박한 집이다. 이층 방 하나는 내 공부방 겸 부부 침실로, 다른 방은 아이들이 공부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이층은 바닥이 목조로 되어 있어서 물이라도 많이 흘릴 경우에는 바로 아래 층의 천장으로 물이 번졌다. 당시에 이미 60여 년이 되었다는, 낡았지만 쓰기에 불편함이 거의 없는 아담한 주택이었다. 집 앞 낮은 담은 사계절 내 다양한 꽃들이 이어 피던 화단이다. 화단의 왼쪽 끝 너머에는 우리가 직접 밭을 일구어 상추와 깻잎, 토마토 등을 가꾸어 먹던 작은 텃밭이 있었다. 벽에 접한 오른쪽의 나무는 여름이면 가지가 이층 오른편의 아이들 방은 물론이고 왼쪽에 있는 침실 발코니까지 닿았다. 매일 아침 나무에 앉아 우는 작은 새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왼쪽 나무 아래에는 작은 벤치가 있는데 가끔 거기에 앉아 앞에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곤 하였다. 사진에는 없지만 그 이전에는 작은 피크닉 테이블이 나무 아래에 있었다. 집을 찾은 손님들과 가끔 식사후 차를 같이 하며 담소를 나누던 좋은 공간이었다.   


  눈만 오지 않으면 푸른 잔디밭이 겨울 내내 펼쳐지는 곳인데 아쉽게도 집앞 너른 초원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아래 사진). 집 주변은 10여 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느긋하게 볼 시간도 없었지만 날씨가 추워 밖에서 오래 있기 힘들었다. 추억이 듬뿍 담긴 집 앞 초원을 서둘러 사진에 담았다. 이 사진을 찍은 곳이 바로 위 사진에 나오는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바로 앞이다. 아래 사진 속 큰 건물은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약 6개월 간 살았던 튜울립트리(Tulip tree)라는 아파트이다. 블루밍턴에서는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11층짜리 건물로 위에서 보면 건물 전체가 약간 휘어진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내부시설도 괜찮고 집도 넓고 좋았지만,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으로 6개월 만에 반타(Banta)라는 타운하우스로 이사하였다. 눈에 덮여있는 곳은 위 사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넓고 구릉진 초원이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에는 아이들이 견학실습을 할 수 있는 꽤 넓은 공간의 식물원이 있다. 여름 밤이면 파릇파릇한 초원에서 불꽃처럼 반딧불이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중간에 보이는 구조물은 쉘터(Shelter)4인데 유학생들이 자주 바베큐 모임을 하던 곳이다. 행사가 있으면 각 가정에서 한 가지씩의 음식을 장만해서 여기에 모여 서로 나누어 먹곤 하였다. 지붕 아래 널찍한 식탁이 있고 바로 바깥에는 바베큐 핏이 여러 곳 있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시설이다. 바베큐를 하고 남은 불에 옥수수와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면서 밤 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바로 왼쪽 앞에는 아이들이 즐겨타던 그네가 있다.   



  1. 장시간 비행이 힘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노화가 주된 원인인 것 같다. [본문으로]
  2. 그 이후의 여정에서는 네비게이션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차료 15불을 매일 날린 셈이 되었다. [본문으로]
  3. 현재 미국의 빈곤율은 약 15%로 개발도상국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본문으로]
  4. 어머니가 여기를 방문하였을 때 초원을 한 바퀴 산책하시고 여기에서 오랜 시간 독서를 하시곤 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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