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국정교과서 논란을 보며

Chuisong 2015. 10. 23. 12:27

   지난 10월 12일 교육부장관이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그가 밝힌 사업의 목적을 짧게 말하면 다양한 역사교과서가 초래하는 '국론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의 갈등은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고조되어 있다.1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는 그 이유를 역사해석의 다양성에서 찾은 셈이다. 

 

  교육부의 발표를 신뢰한다 하더라도, 현안 이슈가 산적한 마당에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것은 뜬금없고 그 논리 역시 설득력이 매우 부족하다.2 현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만 살펴본다면, 현재 사회갈등의 단초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 또 다른 사건(검찰총장의 부당한 경질,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등)을 연쇄적으로 일으켰고 그 와중에 세월호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발생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을 것이다.3 그리고 그 사건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의 연령대는 평균적으로 50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혹은 60대라고 해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가?  "4월 의거 이후 민주적 안정세력이 자리잡지 못함으로써... (중략) 파쟁과 혼란을 일소하고 공산 침략에서 국가와 민족을 건지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 5.16 혁명이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한 청년 장교들은 혁명을 단행하였다. 이것이 5,16혁명으로, 이 혁명은 4.19 의거의 계승이었으며 발전이었다." 1963-73년에 채택된, 국가기관 대선개입 관련자들이 공부한 국정 역사교과서이다. 국정으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국정수행의 전면에 나선 이 시기에 오히려 국론분열과 국가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셈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갈등을 초래한 사람들은 괜찮고 이에 항의한 반대 편의 사람들이 문제란 것인데, 이런 극도의 적반하장을 차치하고라도 이것이 과연 역사인식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반대 편 사람들이 모두 검인정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아닌데 말이다.      

 

 " 박정희 등 군인들이 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민주국가를 건설하자는 기치 아래 5월 혁명을 일으켰다. (중략)  제5공화국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며,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민주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게 빛날 것이다." 

  1980년대 초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실린 근대사의 일부분이다. 내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국정교과서로 근대사를 배웠지만 대학생이 되고 난 뒤 그들 대다수가 당시 정부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현재 위정자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지만 내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이 현재 정부의 가장 우호적인 세력이 되었다. 고교시절의 역사교육이 그리 결정적이라면 이런 다기한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역사교육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개인의 역사관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은 자기가 처한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사고를 변화시킬 수 있고 역사관도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사회갈등의 해결책이 전혀 될 수 없고, 또 그것을 통해 특정 개인의 역사관에 항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어렵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에 국정교과서 타령인가.4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가 더욱 어수선해져 버렸다. 정치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애매한 역사교사나 교수들이 왜 이런 일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취업과 입시 준비에 바쁜 학생들은 왜 엉뚱한 일에 체력을 소모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1. 국론이 무엇이며, 그것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본문으로]

  2. 지금의 사회갈등이 역사교과서 때문이라는 주장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본문으로]

  3. 이미 사법적 판단을 받은 사람도 있다. 이를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조직의 구성원이든 절대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공무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본문으로]

  4. 그러니 이번 사건이 몇몇 개인의 사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거나, 혹은 무언가 다른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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