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아버지 뭐 하시노?

Chuisong 2015. 8. 19. 12:38

   7-8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에게는 매우 익숙한 질문이다. 가정방문 제도가 있던 시절 담임선생님은 방문을 하기 전 면담에서 흔히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 말이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영화 '친구'에서 담임선생(김광규)이 학생(유오성)을 체벌하면서 사용한 이후이다. 우스꽝스럽고 리얼한 그의 부산 사투리 연기 덕분에 이 말은 일약 유행어가 되었다. 최근 국정원 댓글사건 이후 이 말은 희화화되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느거 아버지 뭐 하시노?", "댓글 답니더", "나랏일 하시네".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대화다.

 

  오늘 아침 '기업이 고위공직자의 자녀 풀케어한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하며 다시 이 말을 떠올린다. 기업은 영업에 도움이 되는 고위공직자와의 커넥션이 필요하며, 고위공직자는 그 덕분에 자식들을 대기업에 쉽게 취업시킬 수 있기때문에 기업이 고위공직자의 자녀들을 부정채용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현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늘날보다 더욱 불투명했던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하다. 단지, 그 사실이 드러나기 어려웠고, 그 당시에는 취업 상황이 지금 만큼 심각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그 혜택이 돋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기업과 고위공직자 간에 어떤 갑을관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다만, 현직에 있는 공직자가 퇴직 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가 갑인 것은 분명하다. 갑을 관계에서 갑의 주문을 을이 거절하기 어려운 만큼, 공직자가 기업에 어떤 형식1으로든 자식의 취업을 청탁하는 것은 중대한 협박행위라고 생각한다. 과거 은행에 근무할 때에 국회의원의 자식들이 채용되는 메커니즘을 전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국정감사의 피감기관인 정부은행에 재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은 저승사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위원회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자녀이든 지인의 자녀이든 취업을 청탁하면 그걸 거절할 수 있는 은행원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이번에도 로스쿨 졸업한 자녀를 가진 여야 국회의원 둘이 도마에 올랐다. 사실이라면 그들은 반드시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어야 할 뿐 아니라 범죄자로 기소되어야 한다. 선출직 공무원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것인데, 그 권력을 사유화한 것은 도둑질을 능가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고 경악스러웠던 것은 예전과는 달리 이런 현상을 기업이 먼저 추진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2 기사에는 고위공직자가 부탁 하지 않았는데 지원서에 적힌 그의 이름3을 보고 기업쪽에서 연락을 시도하였다는 내용이 있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취업에 들이는 뼈아픈 노력들을 매일 접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 가슴이 아프고 씁쓸하였다. 그리고 기업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대학을 향해서는 현장에 맞는 교육을 해달라고 거만하게 주문하던 기업이 사실은 이런 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였다니, 입만 열면 떠들던 글로벌 경쟁력이 과연 이거였단 말인가? 

 

   이 땅의 수많은 평범한 부모는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자신의 가난과 무능력4이 고스란히 자식에게 전달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친일 조상을 둔 소위 지도층들은 흔히 말한다. '내가 친일한 건 아니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같은 논리를 이 문제에 적용하면, 지도층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이런 추한 방식으로 개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평범한 부모의 자식들이 그 부모의 평범함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지도층에게 묻는다. 당신의 자식들은 충분히 남보다 앞서 출발하였는데, 결승선까지 앞당기려고 하니 부끄럽지 않냐고. 지금 행동을 진정으로 반성하여, 아무쪼록 그 의미가 '지도가 필요한 계층'으로 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1. 야당의 해당 국회의원은 단지 전화를 했을 뿐이라고 한다.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 [본문으로]

  2. 물론 이는 특정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일 수 있다. [본문으로]

  3. 왜 지원서에 가족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지?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본문으로]

  4. 여기서 무능력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직하게 살려는 노력이 무능력으로 비쳐지기도 하는 현실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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