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대박'이라는 말의 공허함

Chuisong 2015. 6. 12. 21:49

 

  기말 시험 기간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시험기간에 총장이 도서관에서 직접 학생들에게 간단한 먹을거리를 나누어주는 행사를 한다. 시험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행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행사장에 걸리 '시험 대박 나세요'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박이라는 언어의 선택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비록 기원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구를 향해 대박 나라는 말을 하는 것인지. 학생들의 성적을 상대평가 하는 현 제도에서는 모두가 시험을 잘 보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낮은 등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대박 나세요'란 표현을 쓴다는 것은 진실성이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결과'에 대한 무의미한 기원보다 '시험 열심히 보세요' 정도로 '노력'을 격려하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산뜻하지 않을까.

 

  전임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서도 비슷한 문구가 있었다. '모두 부자되세요'라는 말이다. 한 나라에서 제한된 경제성과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굉장한 부자로 누군가는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설사 공평하게 분배되더라도 경제성과의 한계를 넘어서서 모두가 더 부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불특정 다수에게 부자가 되라고 기원하는 것은 성의가 없고, 심지어는 정치인 스스로의 책임을 포기하는 말처럼 들린다. 모두를 더 잘 살게 하는 첫번째 단계는 우선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므로, 이 말은 당연히 '모두를 잘 살게 만들어 드리겠다'라는 말로 바꿔야 그나마 의미가 통한다. 

 

  지금 대통령이 언젠가 기자회견에서 말한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 역시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위 사례들과는 달리 의미가 모호하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진정성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개선이 후퇴 일로에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 말은 너무나 뜬금없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지금 어김 없이 증명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한 평화적인 통일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 후 정부가 취하는 일련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그 선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통일관을 분명히 공표하고 그것과 전혀 조화되지 않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석에서 개인 혹은 소집단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을, 공식적으로 유행처럼 쓰는 사회를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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