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죽음, 그 후

Chuisong 2015. 5. 7. 12:34

   매일 우리는 다양한 죽음을 목격한다. 대개의 경우 그 죽음 앞에 우리는 경건하다. 악랄한 연쇄살인마가 사형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죽음을 후련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과도한 경건함 탓일까,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그다지 흔한 대화의 소재가 아니다.1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 이 명확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죽음 이야기만 나오면 외면하고 싶은 것은 그 만큼 삶에 대한 소망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육체를 움직이는 뇌의 지시는 단지 물질의 힘인가?', '육신이 소멸하면 우리의 의식도 소멸하는가?', '육신의 소멸은 모든 것의 끝일까?'…… 작년 4월의 대참사 이후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너무 안타깝고 허망한 죽음을 눈 앞에 지켜보면서도 손쓸 수 없는 무력감으로,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면 얼마나 허무할까 하는 생각이 커졌다. 이전부터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던 차에 두 권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하나는 로스(Ross, Elisabeth K)가 쓴 『사후생(On Life After Death)』이고, 다른 하나는 롱(Long, Jeffrey)과 페리(Perry, Paul)가 공동으로 쓴 『"죽음, 그 후(Evidence of the Afterlife)』이다. Ross는 스위스 태생의 정신과 의사로서 죽음과 임종 연구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이며, Long 은 방사선 종양학을 전공하는 의사이다. 이들은 모두 임사체험(NDE: Near-Death Experience)을 한 사람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후 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책을 발간하였다. 서로 독립적으로 연구하였지만 연구 결과는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 그 결과에 더 믿음이 간다.2  게다가 이들 책의 저자는 모두 의사이다. 의사는 대체로 인간의 몸을 화학 물질의 결합으로 보고, 심장박동 및 뇌기능의 정지라는 육체적 죽음으로 인간의 생이 끝난다고 철저히 믿는 부류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사후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엮어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3  저자들 스스로 애초에는 사후생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임종 모습에서 무언가 흥미로운 관찰을 하게 되고, 급기야 의학적 죽음이 선언된 사람이 의학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소생을 한 뒤 들려주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것이 한 두 건이었으면 아마 설명할 수 없는 기적 정도로 치부하고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나이, 인종, 성별, 직업, 종교 등에서 너무나 다양한 임사체험자를 만나게 되고, 그것이 그냥 단순한 기적으로 치부하기에는 힘든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들의 공통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에게는 육신과 분리된 의식(영혼)이 존재하며, 육신이 소멸하면 영혼은 다른 세계로 떠난다.

2)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유체이탈에 대한 경험이다. 즉, 영혼이 육신과 떨어져 육신 주위에서 발생하는 일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3) 육신의 죽음으로 다른 세계로 떠나는 사람들은 주마등처럼(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자세하게)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이때 나쁘게 살았던 광경을 보면서 마음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4) 다른 세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를 한다. 여기에는 생전에 자기가 몰랐던 사람도 포함된다.

5)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이승에서의 삶을 더 잘 영위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고 죽음을 일반인(임사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터부시하지 않게 된다.

6)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 지각(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데, 이를 형언하기가 매우 어렵다.  

7) 죽음 이후에 맞는 세계는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책은 우리가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죽음과 그 후를 다루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삶을 더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알려 주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인생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경쟁적으로만 살지 말고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라' 등, 이미 죽음 이후의 삶을 체험한 사람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밝고 건강하다. 삶이 죽음 이상으로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1. 혹자는 이것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논하지 않는 유교의 영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2. 이들의 연구 결과는 두어 해 전에 읽은 책『나는 천국을 보았다』와 대동소이하다. 이 책은, 역시 뇌를 전공하는 의사인 저자(Alexander, Eben) 자신의 임사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본문으로]

  3. 만약 종교인이 관념적으로 사후생에 대해 설파하였다면 아마 나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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