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친일파 문제는 오랜 기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 이후 친일세력의 후손들이 부와 권력을 상속받아 지속적으로 사회의 주류 행세를 해 온 것은 우리 역사의 뼈아픈 부분이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거는 사건들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아마 친일세력의 후손들은 이런 시기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심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자 안병직을 중심으로 한 뉴라이트 운동이 생겨난 것이 이를 말해준다.
2016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부각된 우리사회의 역사인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지배세력이 매우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사상적 양분을 제공하는 뉴라이트가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이들이 이전에 문제가 되었던 대안교과서와 이를 근간으로 한 교학사 교과서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제강점기는 우리의 근대화를 출발시킨 중요한 시기이고 따라서 일본은 우리를 근대화시킨 은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담긴 교학사 교과서가 민비시해 사건 등에서 일본의 관점을 매우 중시하고 두둔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런 관점을 자유경제원이 전파하고, 박근혜, 김무성을 위시한 새누리당이 이들을 이용하여 현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뉴라이트 이데올로그들을 찬양해 마지않는 김무성은 자기 부친 김용주를 친일파가 아니라고 극구 우긴다. 얼마 전 펴낸 김용주 자서전에서는 그를 항일운동가라고 묘사한 바 있다.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 친일사실 조차 부인하면서 비밀독립군이니 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측은하기 그지없다. 식민지근대화론자는 일본을 찬양하는데, 이들의 논리에 따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김무성이 자기 아버지의 친일을 부정하는 것은 모순의 극치이다.
식민지근대화론자에게 친일파는 근대화의 주체세력인 셈인데, 왜 김무성은 친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듯한 행동을 할까. 박근혜와 김무성이 자기 부친들의 친일을 애써 감추거나 부인하려는 것은 이들도 친일이 민족반역행위였음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일제강점기에 나의 친조부는 일본과 적지 않은 규모로 상거래를 했고, 외조부는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친일파 인명사전에 오를 정도의 거두는 아니었지만, 소극적이나마 친일파에 해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그 후손들이 이런 선조들을 떳떳하게 생각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죄스러운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현재 그냥 소시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위 사회의 주류세력으로서 공인이 된 박근혜나 김무성 같은 부류가 그들 선친의 드러난 친일행적을 굳이 부인하고 미화한다는 사실이다. 선조의 친일행위를 반성하는 대신 친일을 숨기거나 미화하면서 공인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국격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2017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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