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이었던가. 연꽃으로 유명한 청도 유등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개한 연꽃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잠시 페북을 살피는데 페친인 이건범의 공지가 떴다. "산업은행 관철동 빌딩에 지하주차장이 있는지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관철동 산업은행 빌딩으로 출근을 한 터라 거기에 지하주차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평지보다 높은 1층을 가진 관철동 빌딩의 반지하 공간에는 숙직실과 소비조합만이 있었고 주차장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은행은 31빌딩 전체를 사용하면서도 건물 근처에 주차건물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즉시 댓글을 올렸다. 그는 댓글로 정보를 준 페친들에게 자기가 준비하고 있는 책 『파산』의 증정을 약속하였다.
2014년이 저물어 가던 지난 12월 페북 메시지로 그가 연락을 했다. 책이 나왔으니 보낼 수 있는 주소를 알려달라고. 며칠 뒤 배달된 책의 내지에는 '힘들 때 웃는 힘!"이라는 그의 친필 메모가 적혀 있었다. 업무 틈틈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몇 시간 만에 혹은 하루 만에 다 읽었다는 페친들의 댓글이 속속 올라왔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원래 책을 읽는 방식이 그렇기도 했지만, 행간에 소복이 찍혀있는 그의 삶의 발자욱이 끈끈이처럼 나를 잡아 마구 읽어 나갈 수 없었다. 그의 삶을 상상하다가 빈번히 나의 삶으로 상상이 옮겨갔다. 틈틈이 읽으면서도 자주 중단할 수 밖에 없었고, 중단하는 회수 이상으로 더 자주 울컥하였다
이건범은 1983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약자의 삶을 연민하며 해결책을 고민하고 실천하다 감옥에 갇힌다. 어렵게 복학한 이후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다 다시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결국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는 남들과 같은 인생궤도를 생각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창업을 선택한다. 창의와 진실로 기업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기업을 정리하게 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파산을 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시력장애 1급 판정을 받는다. 현재는 한글문화연대 등 각종 시민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꾸준히 나를 사로잡은 생각들이 있다.
우선, '그는 나보다 적어도 20년은 앞서 가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다. 50대에 들어선 지금에야 나는 비로소 '실천하는 삶'을 고민하고 있는 중인데(아마 이전에도 이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절실하게 고민한다는 의미) 그는 20대에 이미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더구나 그는 우리 사회에서 비로소 태동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회적 기업(경제)의 개념을 이미 20여년 전에 선험적으로 깨닫고 실천하였다. 내가 비교적 실패 비용이 낮은 은퇴 후에 고려하고 있는 삶을 그는 인생 의 황금기에 몸 전체를 던져 실행한 것이다.
그가 갑자기 파산을 맞은 것은 아니다. 파산의 위험에 처해서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무던히 애를 썼다. 이 부분까지는 그가 비범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이 한 둘은 아닐테니까. 그러나 파산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그의 비범함이 돋보인다. 그의 파산은 '존엄한 파산'이었다. 그것은 파산 직전까지 관계를 맺었던 주변의 이해관계자에게 최소한의 피해를 주기 위한 연착륙 작전이었다. 직원들에게 법규가 정한대로 퇴직금을 지급하려고 노력했고, 거래 고객의 채권이 최대한 변제될 수 있도록 애를 썼다. 그리고 난 후 자기에게 남겨진 채무를 지고 장렬하게 파산한 뒤 오랫동안 신용불량자의 인생을 감수하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정작 그 상황에 맞닥뜨리면 그대로 행하는 '양심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경제적인 파탄과 신체적인 어려움에도 지금까지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대단함 그 자체이다. 하지만 금융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나에게 더한 깨우침을 주는 것은 책의 표지에도 나오는 바로 다음 구절이다. "신용은 은행이 평가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신용을 평가한다." 숫자를 통해 기계적으로 신용을 평가하는 지금의 사회시스템이 누가 봐도 신용의 화신인 그를 신용불량자로 낙인찍고 말았다. 나 역시 신용이라고 하면 의심 없이 금융기관이 평가하는 신용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고, 염치없는 행동을 하고서도 오히려 당당하고, 돈이 모든 가치를 이기는 이런 사회에서 이건범의 파산이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은 작지 않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