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007빵 게임

Chuisong 2015. 4. 1. 23:45

  

    며칠 전 TV에서 몇 명의 연예인이 007빵 게임을 하는 것을 보았다. 젊은이들이 주로 하는 이런 종류의 게임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 왔다. 게임에 별 흥미가 없는 나도 007빵 게임은 몇 차례 해 본 적이 있으니, 이 게임이 아주 오래된 것임은 분명하다. 룰은 단순하다. 리더가 먼저 0을 외치면서 다른 사람을 가리키면, 지칭받은 사람이 다시 0을 외치면서 또 다른 사람을 지목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7을 외치며 다른 사람을 가리키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칭하면서 '빵'하고 외친다. 그러면 마지막에 지칭된 사람 양 옆에 위치한 사람이 으악하면서 죽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엔간하면 중간에 틀리는 사람이 생길 리가 없는 이 게임은, 마지막에 '빵'을 당한 사람이 스스로 놀라서 '으악'하거나, 그의 주위 사람들이 멀뚱거리지 않는지가 관건이다. 

 

    얼마 전 밥으로 주목을 받았던 도지사가 근무하는 도청이, 어제 무상급식의 후퇴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를 향해 종북세력이라고 지목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도청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해당 도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도청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반박하는 논리를 내세울 줄 알았던 시민들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도청의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도민들 중 선거에서 그 도지사를 찍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기들의 논리 대로라면 그 도지사는 종북세력이 지지하는 인물이란 뜻이다. 그리고 같은 도 내 특정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무상급식을 실천한 곳이기도 하다. 반란을 일으킨 전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상급식을 그리도 앞서 실천을 하다니, 그러면 그가 종북세력의 우상이라는 뜻인가. 도청은 종북논란으로 반대세력을 잠재울 계획이었던 모양인데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종북세력. 언제부턴가 개념도 실체도 모호한 이 말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이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사람은 주로 보수 기득권 세력이거나, 일베와 같은 소수자 혐오집단이다. 그들은 자기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종북세력으로 내몬다. 때로는 같은 말을 하더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종북세력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한 이슈에 대해 같은 방향으로 생각할지라도 좀 더 구조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면 어김없이 종북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지난 해 우리나라를 찾은 프란체스코 교황이 세월호 희생자를 '진심으로' 위로하다가 종북세력으로 매도된 적도 있다.   

 

    이렇듯 우리사회에서 종북세력이라는 낙인은 너무 무분별해서, 심심풀이로 하는 007빵 놀이를 연상케한다. 그날 TV에서 나는 마지막에 지목을 받은 사람이 자기 얼굴을 향해 '빵'을 외치는 것을 보고 사뭇 놀랐다. 놀이에 우둔한 나에게는 그것이 매우 창의적인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무상급식 종북논란을 접하니, 도민들을 종북세력이라고 지칭하는 그 도지사가 언젠가는 자기를 가리키며 '너 종북이지?'라고 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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