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산은 고전적인 유형의 테러리스트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며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상해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아주 잘 어울려 다녔지만 김약산은 언제나 조용하였고 육체운동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 거의 말이 없었고 웃는 법이 없었으며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뚜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을 좋아했으며 톨스토이의 글도 모조리 읽었다. 그는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가씨들은 모두 그를 멀리서 동경하였다. 그가 대단한 미남이었고 로맨틱한 용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님웨일즈(Nym Wales)1가『아리랑』2에서 김원봉을 소개하는 구절의 일부분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이름 대신 호인 약산으로 지칭된다. 7월 22일 개봉한 영화 '암살'3의 앞 부분에 김구와 김원봉이 만나서 암살을 계획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김원봉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원봉은 밀양 태생이다. 1919년 이후 의열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해방 이후에 남한으로 들어왔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리자 월북하였다. 사망년도는 분명하지 않으나 1958년경 숙청당한 즈음에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 남한에 그의 무덤이 있을 리 없고 다만, 그의 처 박차정의 묘비가 밀양에 있다. 항일운동 동지이기도 한 박차정은 해방 이전에 중국에서 사망하였는데, 김원봉이 해방 후에 그녀의 유해를 고향 밀양으로 가져왔다. 현재 밀양 내이리에 있는 김원봉의 생가터에는 작은 비석만이 있을 뿐 생가는 전혀 보존되어있지 않다.4
님웨일즈가 평한 김원봉과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삼웅이 평한 김원봉은 거의 일치한다. 김삼웅은 『김원봉 평전』에서 그를 가리켜 한국의 체 게바라라고 칭하였다. 실제로 그의 사진을 보면 게바라처럼 잘생긴 외모가 눈에 띈다. 외모도 그렇지만, 무장항쟁으로 점철된 인생, 게릴라전 상황에서도 항상 책을 가까이 한 일상생활이 체게바라와 더 닮았다. 시기로만 따진다면 김원봉이 1898년 생으로 1928년 출생한 체게바라에 한 세대 앞서니, 그의 행적이 제대로 전파되었다면 오히려 체게바라가 아르헨티나의 김원봉으로 불려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당시 항일 독립운동을 크게 무장투쟁과 비무장투쟁으로 분류한다면 전자의 대표격으로 김원봉의 의열단이 꼽힌다. 그러니 그 당시 일본이 다른 누구보다 김원봉을 가장 두려워하였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이렇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무장투쟁의 지휘자 김원봉은 해방 이후 남북한의 역사에서 모두 사라진 인물이 되고 만다. 사실상 김구의 반열에 있는 인물임에도, 친일파가 득세한 남쪽에서는 공산주의 사상을 탓하면서 그를 애써 잊었고5,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한 북쪽에서는 그를 '연안주의자'로 몰아 숙청하였기 때문이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오롯이 일생을 바친 한 사회주의자가 권력욕에 눈이 먼 남북의 지도자에 의해 버림을 받은 셈이다.
대한민국은 1950년에 발발한 전쟁이 2015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나라이지만, 그 이전에 아직 완전한 독립 조차 달성하지 못한 나라이다. 일생을 바쳐 투쟁한 독립투사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그 후손들은 비참한 생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친일한 조상을 둔 후손들이 정치, 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여전히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1945년 이후 친일파를 청산할 기회가 있었지만 멀게는 권력욕에 눈이 먼 대통령에 의해 무산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 진행된 작업은 여전히 각계의 방해로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이 땅에서 친일의 잔재는 거의 청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김원봉과 같은 인물이 제대로 평가되는 그런 날이 와야 비로소 독립된 나라에 산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암살'은 일제 잔재의 청산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표현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맺힌 응어리가 터지는 후련함을 느끼게 한 '암살'의 마지막 부분과는 달리 현실은 매우 암울한 것 같다.
- 중국의 공산혁명 과정을 서방에 최초로 소개한 책인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의 저자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의 부인이다. 두 책은 각각 중국과 한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 [본문으로]
- Song of Arirang이 원제인 이 책에는 연안에서 만난 김산을 중심으로 당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가 다수 등장한다. [본문으로]
- 1930년대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항일투사들이 친일파와 일본의 고위인사를 암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영화답게 볼 거리가 많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덜춰내고 있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본문으로]
- 인터넷으로 살펴본 그의 생가터는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겨우 남은 묘비가 어떻게 보존될지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밀양이 가까우니 한번 방문해 보아야겠다. [본문으로]
- 해방 후에 그가 남한으로 입국한 것을 보면 그를 단순한 공산주의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전쟁 중에 그의 친동생들 조차 형의 혐의를 덧씌워 살해하고 만다. [본문으로]